[인터뷰] “창작의 동력은 지금을 살고 있는 나 자신”, 최은미 작가를 만나다

놓치 않았던 문학, 소설가의 길로 이끌어
“나에게 가장 중요한 탐구대상은 나 자신”
“명진관 한 쪽에서 스터디하던 시간 떠올라”

▲최은미 작가 (사진제공=최은미 작가.)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인 현대문학상, 우리대학의 자랑스러운 동문인 최은미 작가(사학 96)는 지난 2021년 제 66회 현대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를 배경으로 한 ‘여기 우리 마주’. 여전히 우리대학 재학 시절의 기억이 ‘첫 마음’을 떠오르게 해 꾸준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최은미 작가. 소설이 만들어지기까지 의자에 앉아 버텨야 하는 시간은 여전히 고역이지만 등단 15년 차인 이제는 소설 쓰기의 즐거움이 집필 활동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그. 코로나19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엔데믹 시대로 접어든 지금, 동대신문이 최은미 작가를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선배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최은미입니다. 이렇게 반가운 지면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15년째 소설가로 일하고 있고 장편과 중편, 단편소설들을 써왔습니다.

Q. 선배님은 우리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시고, 2008년 단편소설 「울고 간다」로 등단하셨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본래 소설가의 꿈을 가지고 계셨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어렸을 때부터 쓰는 걸 좋아했는데요, 쓰고 보면 주로 픽션 형식이었어요. 십대 초중반까지는 작가를 꿈꿨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고고학자를 꿈꿨어요. 그래도 문학을 워낙 좋아해 고등학생 때도 대학에 와서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옆에 있었고 계속 뭔가를 쓰 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대학에 들어와 문예창작을 복수전공하면서부터였습니다.    

Q. 소설은 창작의 영역으로서, 작가의 상상력이 크게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에서 3년 근무하는 등 특이한 경험을 하셨는데 다양한 경험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합니다.

A. 경험 그 자체보다는 경험을 자신의 사유 안으로 어떻게 가져오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상력도 결국은 작가가 접해온 세계와 동떨어진 채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현실 생활이든 독서든 학문이든 창작자에게 유의미한 기억으로 남은 경험은 창작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선배님께선 창작의 영감을 어디로부터 얻으시나요?

A. 나 자신의 감정과 상황이 현실의 사건이나 동시대의 상황과 깊이 연관돼 있는 걸 자각하는 순간 소설에 대한 욕구가 많이 올라오는 편이에요. 그래서 나 자신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살피려고 하는 편입니다.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지, 나의 위치성과 한계, 편견, 절박함, 가능성. 저에게 창작의 가장 큰 동력은 이 사회 안에서 지금을 살고 있는 제 자신입니다.    

Q. 선배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내면은 굉장히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팽팽한 감정선과 내면에 혼재된 복합적 감정의 분화로 만들어진 선배님만의 인물들, 작가님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설정할 때 어떤 부분에 집중하시나요?

A. 그 인물을 추동하는 감정 -분노, 공포, 외로움 등의 가장 핵심적인 결을 살리는 걸 최우선에 두려고 해요. 인물을 그릴 때, 특히 화자를 그릴 때 전혀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기보단 인물에 제 자신을 투영시켜서 거기서 인물을 진전시켜나가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 시기 제 안에 가장 강하게 살아 있는, 소설을 쓰게 했던 그 감정을 다루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화자 주변의 인물들은 이 화자와 이 핵심 감정들을 얼마나 긴밀히 주고 받을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설정하는 것 같습니다.

Q. 2021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여기 우리 마주」가 담긴 「눈으로 만든 사람」의「운내」라는 단편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요. 운내를 집필하기 시작할 때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는지, 그리고 운내의 인물들이 사용하는 그들만의 특별한 단어가 등장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처음 출발은 한 여자아이가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가서 짧고도 강렬한 한 철을 보내고 오는 얘기를 쓰고 싶다는 데서 출발했어요. 거기에서 누굴 만날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겪게 될지 생각하면서 제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어떤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세 상에서 분명히 통용되고 누군가들은 누리고 있지만 누군가에겐 존재하지도 실감되지도 않는 언어에 대해 생각했어요. 세상의 언어에서 소외된 내 인물들에게 그들만의 말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Q. 우리사회의 첨예한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아내는 선배님이 생각하는 창작자로서의 사명감이 궁금합니다. 선배님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A. 저에게 가장 중요한 탐구대상은 제 자신이에요. 지금 현재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제 자신의 위치성을 자각하면서 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타인에게로 연결되며 소설에서 좀더 확장된 의미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Q. 현재 한국 문단은 특정 기간 동안 문단을 장악하는 유행, 장르 등에 지배되고 있다는 평이 있습니다. 창작자는 유행에 민감해야 할까요? 창작자 본인의 스타일과 고집이 시류에 꺾이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문학은 가장 첨예하게 동시대의 담론을 받아 안는 장인 동시에 때로는 담론과 작가를 빠르게 소비하는 장이기도 하지요. 자신이 몰두해오던 주제가 사회적 맥락과 만나 동시대성을 얻는 것은 창작자들에게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창작자가 꼭 유행에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동시대의 온도를 나누며 시대적 감수성과 윤리를 민감하게 자각하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창작자 개인의 고유한 스타일과 상충되는 일일지는 좀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소설이 담론을 받아적는 게 아니라 어떤 틀에 도 들어맞지 않은 채 그 자체의 에너지로 나아가면서 빛나는 건 어떨 때 가능할까요. 한국 문단의 시스템 안에서 창작자로 생존한다는 것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아니게 할까요. 깊이 고민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Q. 올해로 등단 15년차이십니다. 소설가로서의 활동 초기와 현재를 비교해 변화를 찾아본다 한다면 어떤 것 이 있을까요?

A. 초기엔 소설쓰기에 대한 동기나 욕구가 가장 앞섰다면 지금은 그 즐거움이 좀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소설이 만들어지기까지 의자에 앉아 버텨야 하는 시간은 똑같이 힘든 것 같습니다.

Q. 우리대학은 뛰어난 문인들을 자주 배출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문예창작을 전공으로 삼지는 않으셨지만, 작가 활동에 우리대학 재학 경험이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을까요?

A. 대학 때 가장 많이 드나든 곳은 학생회관이었어요.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현대소설을 읽었습니다. 명진관 한쪽에서 불을 꺼놓고 탑과 불상 슬라이드 필름을 돌려 보며 학회 스터디를 하던 시간들도 떠오릅니다. 도서관의 불교학 자료실, 복사기에서 막 나온 따끈따끈한 소설 뭉치를 들고 소설 합평 수업에 들어가던 시간들도 떠오르고요. 재학 시절 접했고 좋아했던 것들이 그 후에 도 계속 이어졌고 여전히 저에게 ‘첫 마음’을 상기시켜주면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느낍니다.    

Q. 창작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A. 창작을 하고자 마음먹었다면 분명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분들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이제 막 창작을 시작했거나 습작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하고 싶은 ‘말들’보다 ‘가장 하고 싶은 말 하나’에 집중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 하나가 무엇인지 아는 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의외로 자신이 초기에 쓴 한 두편의 소설 속에 보석처럼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걸 쓸 때는 분명 쓰는 재미가 있었을 거예요.

Q. 소설가의 미래는 차기 작품 계획을 통해 비춰볼 수 있 을 것 같습니다. 구상하고 계신 작품과 더불어 앞으로 의 목표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A. 얼마 전 장소기억과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갖고, 지역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저는 도심보다는 지방 소도시, 협곡, 산 간, 밭 등등 지형적 지리적 특성이 강한 공간에 크게 매료되는 편인데요. 단순히 소설속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지역, 로컬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 여러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코로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마치면 다시 ‘운내스러운’ 장소로 이동해 한 인물의 장소감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살피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등단 이후 15년, 이제 소설 쓰기의 즐거움을 음미하게 됐다는 최은미 작가. 그의 말처럼, 소설 속 작가의 이야기는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타인에게 연결됨으로써 그 의미가 확장된다. 최은미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가 다시 우리에게 이어질 때, 자기만의 빛을 찾은 독자들의 곁에서 최은미 작가를 마주할 수 있길. ‘쓰는 재미’에 빠진 최은미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날을 고대한다.

출처: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